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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대전(赤壁大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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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청두(成都)에 있는 무후사는 제갈공명을 기리는 사당이다. 이곳에는 악비가 쓴 제갈양 출사표 등이 전시돼 있다. | |
조조와 손권은 제각기 천하를 이분하고 있지만 아직 유비는 발 붙일 곳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 조조가 대군(大軍)을 거느리고 손권을 치려한다. 손권은 항복을 해야 하느냐 일전(一戰)을 불사(不辭)해야 하느냐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손권의 조정 역시 항복과 전쟁으로 의견이 갈려 있다. 주전론(主戰論)의 대표 격인 노숙은 갈등을 하고 있는 주군을 설득하기 위해 유비의 수하에 있는 공명을 초청한다. 공명으로서는 일생일대의 기회이다. 삼고초려를 통해 세상으로 나왔지만 주군으로 섬기는 유비는 아직 제대로 된 거처 하나 없다. 만약, 손권이 항복을 택한다면 유비 역시 조만간 조조에게 항복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어떤 방법을 사용해서건 손권이 전쟁을 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가능할까?
#설전군유(舌戰群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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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휘장 | |
삼국지에서는 공명이 오나라 선비를 설득하는 과정이 설전군유(舌戰群儒:한 무리의 신하들과 말싸움을 벌이는 것)라는 제목으로 묘사되어 있다. 공명은 설전군유에서는 모두 일곱 명의 오나라 선비와 말의 싸움을 벌인다. 이 과정에서 공명은 한 단계 높은 차원, 즉 '맞대응 하지 않기'의 전략으로 이들 신하들을 압도해 나간다 (자세한 내용은 졸저 '설전 삼국지' 참조).
오나라 선비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공명, 당신은 천하의 전략가라고 한다. 하지만 당신이 유비를 섬긴 뒤 무엇 하나 전쟁에서 이룬 것이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자신의 주군(유비)이 등을 비빌 언덕하나 마련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조조와 전쟁을 해야 한다고 우리를 설득하느냐는 것이다. 공명은 이들의 주장에 맞대응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신 '당신들은 어린 아이처럼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유비처럼 약소한 군대를 가지고 지금까지 이 정도로 명맥을 유지한 것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 이해하지 못하느냐? 만약 당신들이었다면 벌써 사라지고 없었을 것이다.'
즉, 다음과 같은 논리다. '너는 왜 공부를 못하느냐'하고 공격하면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경제력, 체력, 능력 등의 다양한 요소가 필요한데 지금 나는 이 중 어떤 것도 없는 상태에서 이 정도라도 공부를 하니 얼마나 장하냐. 반면, 너는 나와 달리 모든 여건이 다 갖추어져 있는데 왜 반에서 일등을 하지 못하느냐'와 같은 형태다. 참으로 대단하다.
#손권에 대한 설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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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무후사에 있는 제갈공명상. | |
먼저 손권이 묻는다. '대체 조조의 군세가 얼마나 되오?' 이 답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공명이 손권을 설득할 수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결정된다. 군세가 보잘것 없으면 한 번 싸워보는 것이고, 군세가 장대하다면 다른 가능성을 고려해야 하는 것 아닌가. 공명의 답은 의외다. '기병, 보병, 수병이 대략 백만을 넘습니다.' 손권으로 하여금 전쟁을 하도록 설득하러 왔는데 오히려 공명의 말은 그 반대로 나간다. 왜 그런가? 정말 그런가 라고 묻는 손권의 질문에 상세하게 조조의 군대가 얼마나 강대한지를 설명한다. 고개를 끄덕거리던 손권이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겠소'하고 자문을 구한다. '만약 오(吳)와 월(越)의 군사로써 능히 중원과 힘을 겨루실 수 있겠거든 속히 조조와 연을 끊어야 할 것이나,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모사들의 말씀대로 군사를 거두어 무기를 버리고 북면(北面:신하로서 왕을 섬김을 뜻함) 하여 조조를 섬기는 게 옳을 줄로 압니다.' 아하 무슨 말인가. 전쟁을 하도록 손권을 설득하러 온 공명이 오히려 항복을 하길 권유한다.
하지만 공명의 전략은 다 끝나지 않았다. 손권이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여 묻는다. '만약 그렇다면 유예주(유비)는 왜 항복을 하지 않는 것이오?' 나 보고는 항복하라고 하면서 당신은 왜 그렇게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공명의 최후의 일격이 여기서 나온다. '유예주는 황실의 후예로, 영특하신 재주가 세상을 덮어 모든 선비들의 추앙을 받는 터가 아닙니까?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오로지 하늘의 뜻이거늘, 어찌 몸을 굽혀 남의 지배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손권의 반응이 어떠할까? 당연하지 않은가? 자존심이 상해도 이 이상 더 상할 수는 없지 않을 것이다.
#공명의 전략과 협상술
이 일화는 공명이 왜 희대의 전략가이자 협상가인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우선 공명은 자기가 왜 손권을 만나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다시 말해 협상의 목적이 분명했다. 손권을 설득해 전쟁을 하도록 해야 한다는 목표가 분명했기에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협상의 전 과정을 기획할 수 있었다. 그러니 위의 문답 (자세한 문답의 내용은 졸저 '설전 삼국지' 참조)은 잘 짜여진 한 편의 시나리오였다. 협상의 목표가 분명하다면 이제 협상 상대방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손권은 젊다. 그러니 손권을 움직이는 제일 좋은 방법은 합리적인 설득과 설명이 아니라 혈기에 기반한 자존심이다. 공명의 계산은 이러했을 것이다. 그러니 위와 같은 시나리오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공명의 이같은 협상술은 손권에 이어 주유를 설득할 때도 그대로 사용된다. 손권이 마지막까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공명은 손권의 가장 가까운 조언자인 주유를 설득한다. 주유를 설득함에 있어서도 공명은 천하의 흐름과 군세의 강약을 논하는 정공법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주유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방법을 취한다. 조조가 오나라를 침략하는 실제적 이유는 손권과 주유의 아내를 얻기 위해서라는 암시를 던지는 것이다. 자신의 가족의 안위가 침범을 당할 때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사람은 없다.
손권과 주유는 바보가 아니다. 그러니 공명이 이런 방법으로 두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정말 잘 짜여진 시나리오, 적절한 문장과 말, 그리고 극적인 반전이 필요했다. 공명은 이런 전략을 머리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것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으로 행할 수 있었다. 이게 그의 힘이다.
#말과 설득의 힘
주유와 손권을 설득하니 오나라는 마침내 조조와 일대결전(즉 적벽대전)을 벌이기로 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이 적벽대전에서 손권이 이김으로써 유비는 형주 지방을 얻어 자신의 생존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노숙을 따라 오나라로 온 공명의 목적은 완벽하게 달성된 셈이다. '만약'이라는 가정은 참으로 적절하지 못하지만, 만약 공명이 손권과 주유 그리고 오나라의 신하를 협상을 통해 설득하지 못했더라면 오, 촉, 위 삼국의 정립(鼎立)이라는 공명의 천하 삼분지계(三分之計)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러니 말과 설득, 그리고 협상은 참으로 놀라운 힘을 발휘한 셈이다.
글: 부산대 경제학과 교수·협상 컨설턴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