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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3-25 16:02
11.3.25 왕이 되기 싫었던 남자 조지6세(킹스 스피치) - 건국대 스피치 협상 CEO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6,755  
왕이 되기 싫었던 남자 조지6세(킹스 스피치)

1936년 12월11일, 영국 국왕 에드워드 8세는 공식적으로 자진 퇴위를 발표했습니다. 그는 BBC 라디오를 통해 국민들에게 "사랑하는 여인의 도움과 지지 없이 국왕이라는 무거운 책임을 이행하는 것은 나로서는 불가능하다(I have found it impossible to carry the heavy burden of responsibility… without the help and support of the woman I love)."라는 로맨틱한 메시지를 남깁니다.

오늘날까지 '최고의 권력을 버리고 얻은 세기의 사랑'으로 유명한 에드워드 8세는 이혼 경력이 있는 유부녀 월리스 심슨과 결혼하기 위해 왕좌를 버렸지요. 전 세계 언론의 관심은 왕관을 벗은 에드워드 8세와 심슨 부인의 로맨스에 집중됐지만, 그들의 그림자 뒤에는 '억지로' 왕관을 이어받아야 했던 또 다른 커플의 고통이 숨어있었습니다.



조지 6세와 퀸 마더, 요크 공작부부 시절의 모습. 두 사람은 엘리자베스2세 현 영국 여왕의 부모다.

에드워드8세의 동생으로, 요크 공작부부(the Duke and Duchess of York)의 지위에 있던 알버트 왕자와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전세계 3분의 1을 통치하는 대영제국의 왕이 되었다는 소식은 이들에게는 청천벽력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알버트는 놀기 좋아하고 사교적인 형 에드워드와 달리, 소박하고 얌전한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학창시절 왕따를 당하곤 했던 이 왕자는 집안에 혼자 틀어박히길 좋아했으며, 사람들 앞에 설 때에는 긴장한 나머지 심하게 말을 더듬었습니다. 당연히 황태자인 형이 왕위에 오를 것으로 여겼던지라, 단 한번도 자신이 왕이 될 것이라고 상상조차 하지 않았지요.

에드워드8세가 철없는 소년처럼 심슨 부인과 애정행각을 벌이느라 국왕으로서의 의무를 소홀히하고 이에 경악한 정치인들이 '양위'를 언급하기 시작하자, 조용히 송어 낚시나 즐기며 가족과 화목하게 지내고 있던 알버트는 하늘이 무너질 듯한 쇼크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계속해서 형이 제 정신을 차리고 국왕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도록 설득했으나, 결국 양위가 현실화되자 아내와 눈물을 흘리며 슬퍼했습니다. 수수한 삶을 살아온, 그리고 앞으로도 그리 살 것이라 믿었던 두 사람은 이 엄청난 '신분상승'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조지 6세의 대관식 사진. 어린 엘리자베스와 마가렛 공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억지로 왕위에 오른 조지6세는, 고통스럽고 위축된 삶을 살았을까요? 아닙니다. 수줍고 내성적인 성격을 가졌지만, 그에게는 왕족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겠다는 의지가 있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영국의 왕으로서 당당하고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얻었습니다.  독일군의 공습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국민과 운명을 함께 하겠다"며 런던을 떠나지 않고 군대와 공장, 공습피해지역을 시찰했습니다. 실제로 버킹엄궁이 폭격으로 부서지는 상황에서도 조지 6세 부부와 두 공주는 궁 안에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성실했고, 자신의 성격에 맞지 않는 대외활동도 피하지 않았습니다. 미국과 영국의 관계 개선에 성공했으며, 영국 왕실의 위엄을 드높였고, 국민에게 자상한 아버지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었지요.

하지만, 계속된 스트레스와 부담으로 조지6세의 건강은 점차 악화되어 갔습니다. 전쟁을 거치며 흡연량이 부쩍 늘어 결국 1951년 폐암 진단을 받고 그 이듬해 2월3일 56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군 시찰 중인 조지6세와 엘리자베스 왕비(퀸 마더)

조지6세의 고민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봐온 아내 엘리자베스(퀸 마더)는 "결국 내 남편을 죽인 것은 심슨 부인"이라고 말 한 바 있습니다. 조용히 편안한 삶을 살았어야 할 남편이 느닷없이 왕위를 이어받아 전쟁을 치르고 나라를 이끄는 부담 때문에 일찍 죽게 되었으며, 모든 것은 심슨 부인과 에드워드8세의 '철없는 로맨스'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영국민의 입장에서는 에드워드8세 대신 조지6세가 왕좌에 앉게 된 것은 행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치와 방탕한 생활을 일삼던 에드워드8세는 공교롭게도 나치와 히틀러에 호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전쟁 중에도 독일 외교관들과 어울리며 그들을 적대시하는 영국 국왕을 '바보'라고 깎아내리기까지 했습니다.

역시 나치 독일의 지지자였던 심슨 부인은 에드워드8세와 연인이 된 후에도 주영 독일대사와 뜨거운 관계를 유지하며 영국의 비밀정보를 흘렸다고 하네요.

이런 두 사람이 2차 대전 당시 영국의 왕과 왕비 자리에 있었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까요? 영국 작가 노엘 카워드는 에드워드8세의 양위가 '영국의 행운'이었다고 말하며 "영국 방방곡곡에 심슨 부인의 동상이라도 세워 그녀가 이 나라에 내려준 축복을 감사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윈저 공작부부'의 지위에 머물러야 했던 심슨 부인과 에드워드8세.

정말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자리임이 분명한데, 이어받은 책임과 의무 때문에 할 수 없이 앉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중압감과 속박에 못 이겨 결국 '진짜 나 자신'을 찾아 뛰쳐나갑니다. 자유 의지와 꿈의 실현을 위해서지요. 하지만, 또 다른 이들은 굳은 의지와 신념으로 개인으로서의 욕망을 누르고 끝까지 타인을 위한 삶을 살아갑니다. 

조지6세는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말더듬이에 왕따였던 소년, 눈물을 줄줄 흘리며 억지로 왕위에 올랐던 남자. 그는 자신이 결코 원하지 않던 것이더라도,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소중히 여길 줄 알았습니다. 그런 노력 덕분에, 누구도 그를 '왕에 어울리지 않는 남자'로 기억하지 않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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